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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깃든 생명 <59> 독수리

입력 : 2019-01-23 11:34:20
수정 : 2019-01-23 11:35:22

 

-독수리가 보내는 슬픈 편지-

 

 

<‘독수리의 겨울순례지를 찾아>

고향 몽골을 떠나 솔롱고스에서 겨울순례를 하고 있는 독수리입니다.

몽골사람들은 솔롱고스를 무지개라고 하지만, 한국, 한국인을 솔로고스라고도 하지요.

겨울순례지-‘파주를 향한 저는 둥지인 몽골 북고비 바가 가린춀로에서 1028일 출발했습니다. 10여일 몽골을 맴돌다가 1110일 몽골과 중국의 국경지대를 넘어 내몽골 자치구 시린궈러 맹의 쑤니터 우기을 거치고 950km를 날라 라오닝성 번시에 1126월 도착했습니다. 북한의 수풍발전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요. 그리고 4일을 머물다가 논스톱으로 드디어 121일 겨울순례지-‘파주임진강가에 닿았습니다.

우선, 월동 피난처를 제공해 주시고, 더 나아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243)로 지정까지 해 주신 대한민국에 감사를 드립니다. 법적 지위로 따지면 석굴암이나 숭례문, 난중일기와 대등한 위치이니 거듭 고맙다 하지 않을 수 없지요. 더 나아가 파주의 환경단체 임진강생태보존회에서 독수리식당을 마련해 주셔서 굶주림을 피해 겨울나기를 할 수 있게 해주신 대해 감읍, 감읍할 뿐이죠.

 

그러나 지금 저희들의 처지를 돌아보면, 참으로 참담하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연기념물커녕, ‘AI(가금인풀루엔저)를 퍼트리는 범법자이거나 기피하는 생물로 여기고 있는 실정입니다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사 직전의 저희들의 겨울나기.....>

어쨌거나 저희들은 겨울먹이를 위해 파주의 하늘을 빙빙 돌고 있습니다. 독수리들은 눈뿐만 아니라 냄새도 매우 뛰어 나지요. 눈은 높은 곳에서 수백m 쯤 아래 먹이를 찾고, 코는 70km 이상 되는 먼 곳에서 사체의 냄새를 맡을 정도지요. 허지만, 그저 이곳저곳 하늘만 나를 뿐입니다. 사람들은 맹금류의 제왕’, ‘하늘의 왕자으로 여기며 이름을 부르지만, 사실 독수리는 생태계의 청소부가 맞습니다. 허니, 살아 있는 짐승을 보고만 있을 뿐, 먹이를 사냥하지는 않습니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은 단지 청소 도구일 뿐, 사냥도구는 아니지요.

굶주림에 지치면 배추, 무밭에도 내려 앉아 얼어붙은 무를 먹기도 하죠. 어쩌다 양계장 주인이 가축의 사체를 뿌려 줘 횡재하는 날도 있지요. 저희 동료들의 수는 항상 많고, 가끔 생기는 먹이는 적다보니 늘 아귀다툼이지요. 참 부끄럽습니다. 서열이니 순서니 할 처지가 못 됩니다. 다른 지역의 경우도, 이런 실정에서 아사(餓死)를 면하는 것은 기적일 뿐이지요. 굶기를 밥 먹다시피하다 보니 유혹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한국은 국제보호조의 킬링필드인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972월에 있었던 임진강 독수리 떼죽음 사건이지요. 독극물 밀렵으로 죽은 오리와 너구리를 먹고 독수리 32마리가 참사를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속보에, 외국의 환경단체들까지 한국은 국제보호조의 킬링필드인가?”는 항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에 동원된 수사관 수만 30(군합수부 18명 포함)이었답니다. 당시 저희 선배들은 큰 기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을 안겨줬다고 해요. 범인도 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참사는 연례행사처럼 계속해서 일어났답니다. 한해에 보통 20-30여 마리가 주검이 되기도 합니다. 올해도 마찬가지겠지요?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을 반납해야 하나요?”>

얼마 전부터 환경단체에서 먹이주기를 한답니다. 이러한 환경단체의 먹이 주기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주는 분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몽골처럼 야생동물의 사체나 가축의 사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면 먹이주기를 할 필요가 없지요. 비교적 야생동물이 많다는 DMZ지역에도 야생동물의 사체를 시력 좋은 저희 눈으로 찾기 어렵습니다. 고라니 같은 짐승들이 크게 늘어났지만, 옛날과 같이 범과 늑대 같은 맹수가 없으니 사냥잔해물이 생길 수가 없지요.

아무튼 저희 독수리들은 머잖아 겨울이 끝나면 고향으로 귀환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참사가 재현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이 땅의 주인들께 몇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선, 저희가 구걸을 하지 않고 자연에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을 복원해 주십시오. 그 때까지만이라도 비극이 재현되지 않을 정도의 적정한 먹이를 제공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 지역에 먹이주기를 집중하는 것은 먹이서열에 밀린 독수리들에게 치명적입니다. 가급적 분산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라와 가정에 평화와 희망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임진강가에서 독수리올림

대필자 노영대(임진강생태체험학교장/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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